<책읽기 365> 독서와 나의 인생 - 가난...방황...좌절 '책'을 통해 이겼다[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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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도서관을 재단장하고 나서 대표격인 독서 좌우명을 하나 써 붙이고 싶었다. 독서에 관한 명언들이 많고 많지만 나는 그다지 망설이지 않고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를 골랐다. 여기서 전하는 메시지는 두말할 것도 없이 앞의 부분이 아니라 뒷부분에 있다. 내가 졸저에서 어느 시인의 말투를 흉내내어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은 8할이 책'이라고 했지만, 역시 내 인간을 구성하고 내 인생을 수립한 최대의 공로는 책에 돌려야 할 것 같다. 책은 지식이나 정보 같은 실용적 가치만 주는 것이 아니라 세계관 정립이나 인격 형성, 그리고 정서 순화와 정신의학적 치유까지 수행한다. 내가 일찍이 부모를 잃고 고아처럼 자란 세월을 얘기하다 보니 어느 기자가 이런 질문을 했다. "그렇다면 사춘기의 정서적 위안도 책에서 찾으셨겠네요?" 정말 그랬다. 내가 유소년기의 고독과 사춘기의 방황을, 혹은 청년기의 갈등과 좌절을 모두 견뎌내고 이겨낼 수 있었던 뚝심은 독서 아니면 얻을 데가 없었다. 너무 일찍 찾아온 인생고, 풀도 물도 없는 사막에 혼자 내동댕이쳐진 것 같은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나를 위로하고 용기를 준 것은 책이었다.
점심도 못 먹는 가난 속에서도 아낀 푼돈을 가지고 5일장 좌판에 가서 마음에 둔 책을 빌리고는 환호하던 십대 사춘기, 낙향하여 칩거하며 너무나 책이 그리워 남의 백과사전을 빌려 통째로 읽던 이십대 청년기를 생각하면 요즈음의 독서환경은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선진국에 비할 수는 없어도 지금은 독서 여건이 얼마나 좋아졌는가. 호화판 책들이 넘쳐나고 손만 뻗치면 책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청소년들로 하여금 책을 못 읽도록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과열된 사교육은 고질이 된 사회 문제다. 그러나 어쩌면 공교육이 더 문제다. 공교육이 정규 커리큘럼을 충실히 수행하고, 미처 손이 못 미치는 공교육의 틈새는 사교육이 메워주는 공생관계가 바람직한데 왜 그것이 안 되는가. 교육부가 정해준 세세한 교수지침에 따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식 교육과정을 이수시키는 방식이 전국적으로 균질한 교육을 보장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한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창의성을 요구하는 정보시대에 이런 붕어빵 교육은 역기능 또한 만만치 않다. 중학교의 특목고 열풍이나 고등학교의 대입전쟁은 이 붕어빵을 얼마나 크게 만드느냐 하는 무의미한 경쟁일 뿐이다.
이런 교육 체제와 풍토에선 붕어만 나오지 잉어는 나오기 힘들다. 메기도 나오고 가물치도 나오고 오징어, 뱀장어도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소품종을 대량으로 생산하던 개발독재시대의 산업 구조를 졸업하고 이제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가야하는 시대다. 공장에서 벽돌 찍어내듯 똑같은 인재를 배출할 일이 아니라 좀더 다양한 인재를 맞춤식으로 길러내야 하는 시대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택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커리큘럼도 열리고, 교사.학부모.학생의 사고가 유연해져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에게 교과서와 교사를 뛰어넘는 독서가 가능하고 여기서 진정한 교육, 바람직한 인재 양성의 문이 열린다고 본다.
봄바람에 꽃소식이 넘친다. 우리 교육의 꽃소식은 독서 바람과 더불어 오지 않을까 기다려진다.
이혜화
前경기 화수고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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