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어, 우리 식대로 적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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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호의 교실 밖 국어여행/[난이도 수준-중2~고1]
언젠가 우리 아파트의 재활용 쓰레기 수집장에 이렇게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타야 수집 불가.’ 어떤 주민이 폐타이어를 갖다 버렸는데, 그걸 본 경비 아저씨가 타이어는 재활용이 안 되니 수거해 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외래어 표기법이 생겨난 이유는 단순하다. 자동차 바퀴를 가리켜 사람들이 저마다 ‘타야’ ‘타이아’ ‘타이어’ ‘타이여’ 따위로 적는다면 그게 다 한 사물을 가리키는 말인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꽃’을 ‘꽂’ ‘꼳’ ‘꼿’같이 제멋대로 적으면 의사소통에 큰 불편이 생기는 것과 똑같다. 그래서 “자동차 바퀴를 뜻하는 ‘tire’는 다 같이 ‘타이어’로 적기로 하자”는 약속을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를 대신해서 외래어 표기법이라는 약속을 만든 사람들이 굳이 ‘타야’를 버리고 ‘타이어’를 취한 까닭은 뭘까? 그건 ‘타이어’가 표준영어의 발음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즉, 외래어를 적을 때는 원어민의 발음을 따라가는 게 원칙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banana’는 왜 현지 발음에 가까운 ‘버내너’가 아니라 ‘바나나’일까?
답은 이미 여러분이 갖고 있다. 여러분에게는 ‘버내너’와 ‘바나나’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눈에 익은가? 당연히 ‘바나나’다. 즉, 대다수 한국사람들에게는 이미 ‘바나나’가 ‘원숭이가 좋아하는 길쭉하고 노란 열대과일’을 가리키는 기호로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다. 실제 영어 발음과는 상관없이 말이다.
외래어 표기법에는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을 존중한다’고 되어 있다. 일본어에서 온 ‘냄비’나 포르투갈어에서 온 ‘빵’ 같은 말이 이런 경우다. 현지 발음하고 별 상관없는 ‘미국’ ‘영국’ ‘독일’ ‘호주’ 같은 나라이름도 다 이 ‘관용’에 들어간다. 관용이란 수많은 사람들한테 익숙해진 것을 말한다. 원칙이 어떻든, 사람들끼리 말과 글을 주고받는 데 널리 쓰이고 있다면 그게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외래어 표기법은 외국어 발음을 그대로 적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끼리 의사소통하는 데 도움을 얻자고 만든 것이다. 그러니 ‘파리’가 왜 현지 발음에 더 가까운 ‘빠리’나 ‘빠히’가 아니냐고, 또 ‘라디오’는 왜 ‘레이디오우’가 아니냐고 투덜댈 까닭이 없다. 이런 게 불만이라면 ‘서울’을 ‘써울’이나 ‘쎄올’로 발음하는 외국인들도 나무라야 한다. 외국인들이 다른 나라 말을 자기 식대로 발음하듯이, 우리도 어떤 말이든 우리 식대로 적으면 된다. 외래어 표기법은 우리를 위한 것이다. 우리끼리 편리하게 쓰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한국어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한국사람들이니까.
여기서 잠시. ‘외래어가 한국어냐’ 하는 물음은 우문이다. 한국어는 한국사람들이 쓰는 말이다. 한국사람들이 쓰는 말은 토박이말이든 한자어든 외래어든 다 한국어다(이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다시 얘기하겠다).
김철호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 저자
언젠가 우리 아파트의 재활용 쓰레기 수집장에 이렇게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타야 수집 불가.’ 어떤 주민이 폐타이어를 갖다 버렸는데, 그걸 본 경비 아저씨가 타이어는 재활용이 안 되니 수거해 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외래어 표기법이 생겨난 이유는 단순하다. 자동차 바퀴를 가리켜 사람들이 저마다 ‘타야’ ‘타이아’ ‘타이어’ ‘타이여’ 따위로 적는다면 그게 다 한 사물을 가리키는 말인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꽃’을 ‘꽂’ ‘꼳’ ‘꼿’같이 제멋대로 적으면 의사소통에 큰 불편이 생기는 것과 똑같다. 그래서 “자동차 바퀴를 뜻하는 ‘tire’는 다 같이 ‘타이어’로 적기로 하자”는 약속을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를 대신해서 외래어 표기법이라는 약속을 만든 사람들이 굳이 ‘타야’를 버리고 ‘타이어’를 취한 까닭은 뭘까? 그건 ‘타이어’가 표준영어의 발음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즉, 외래어를 적을 때는 원어민의 발음을 따라가는 게 원칙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banana’는 왜 현지 발음에 가까운 ‘버내너’가 아니라 ‘바나나’일까?
답은 이미 여러분이 갖고 있다. 여러분에게는 ‘버내너’와 ‘바나나’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눈에 익은가? 당연히 ‘바나나’다. 즉, 대다수 한국사람들에게는 이미 ‘바나나’가 ‘원숭이가 좋아하는 길쭉하고 노란 열대과일’을 가리키는 기호로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다. 실제 영어 발음과는 상관없이 말이다.
외래어 표기법에는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을 존중한다’고 되어 있다. 일본어에서 온 ‘냄비’나 포르투갈어에서 온 ‘빵’ 같은 말이 이런 경우다. 현지 발음하고 별 상관없는 ‘미국’ ‘영국’ ‘독일’ ‘호주’ 같은 나라이름도 다 이 ‘관용’에 들어간다. 관용이란 수많은 사람들한테 익숙해진 것을 말한다. 원칙이 어떻든, 사람들끼리 말과 글을 주고받는 데 널리 쓰이고 있다면 그게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외래어 표기법은 외국어 발음을 그대로 적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끼리 의사소통하는 데 도움을 얻자고 만든 것이다. 그러니 ‘파리’가 왜 현지 발음에 더 가까운 ‘빠리’나 ‘빠히’가 아니냐고, 또 ‘라디오’는 왜 ‘레이디오우’가 아니냐고 투덜댈 까닭이 없다. 이런 게 불만이라면 ‘서울’을 ‘써울’이나 ‘쎄올’로 발음하는 외국인들도 나무라야 한다. 외국인들이 다른 나라 말을 자기 식대로 발음하듯이, 우리도 어떤 말이든 우리 식대로 적으면 된다. 외래어 표기법은 우리를 위한 것이다. 우리끼리 편리하게 쓰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한국어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한국사람들이니까.
여기서 잠시. ‘외래어가 한국어냐’ 하는 물음은 우문이다. 한국어는 한국사람들이 쓰는 말이다. 한국사람들이 쓰는 말은 토박이말이든 한자어든 외래어든 다 한국어다(이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다시 얘기하겠다).
김철호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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